칼럼 플라멩코의 뜨거운 심장이 뛰는 스페인 음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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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Toronto 댓글 0건 조회 3,160회 작성일 20-03-11 14:16본문
뜨거운 태양 아래 온몸으로
삶을 노래하는 예술
스페니쉬 기타
뜨거운 태양 아래 온몸으로 삶을 노래하는 예술이 있다. 빠르지만 절대 경박하지 않은 리듬 속에서 현란한 기교가 돋보이는 기타 연주, 원색의 화려한 주름치마를 입고 격렬한 발놀림과 화려한 몸짓으로 관객을 사로잡는 무용수의 춤, 그리고 거칠고 깊은 목소리로 영혼을 뒤흔드는 노래, 이렇게 위대한 3가지의 예술이 하나가 되어 지구상에서 가장 강렬한 개성을 지닌 전통예술을 만든 것이 바로 스페인의 플라멩코이다.
대부분의 유럽국가가 기독교 중심의 문화를 지니고 있는 반면에 스페인은 이슬람의 영향과 집시들의 혼이 융합된 아주 매력적이고 독특한 문화를 지닌 나라다. 이렇게 개성 넘치는 스페인의 문화는 다시 가까운 이웃 나라인 포르투갈의 파두와 중남미 대륙의 식민화 과정에서 이미 소개한 아르헨티나의 탱고, 쿠바의 살사와 쏜, 멕시코의 마리아치에 이르기까지 세계 전통음악에 큰 영향을 주었다. 스페인을 대표하는 플라멩코 소개에 앞서 스페인 음악의 중심이 되는 기타를 언급하고자 한다.
독일과 이탈리아가 주도한 클래식 음악은 현악기와 관악기가 중심이 되는 오케스트라 음악과 성악으로 이루어진 오페라 음악으로 크게 구분할 수 있다. 그러나, 유럽의 남쪽에 위치한 스페인은 따뜻한 날씨와 풍요로운 자연환경의 영향으로 기타가 중심이 되는 음악이 성행하였다. 여기에는 한때 이슬람의 식민 지배를 받은 고난의 역사와 핍박을 받으면서 남쪽 끝의 나라 스페인 지역까지 내려온 집시들의 영향도 매우 컸다. 또한 휴대가 용이했던 기타는 서민들의 생활 깊숙이 파고들면서 귀족이 아닌 대중문화를 선도하고, 일찍이 스페인 음악의 중심에 기타가 있었다.
뛰어난 기타리스트이면서 작곡가였던 타레가(1852~1906)는 19세기 후반 스페인의 민족주의 음악 운동을 선도하면서 스페인의 영혼을 되살려냈다. 기타의 현대적인 연주법을 완성했던 그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은 신비로운 트레몰로 주법을 활용하여 애잔하면서도 맑고 투명한 멜로디 라인으로 낭만주의 기타의 꽃을 피웠다. 또한 ‘아란후에즈 협주곡’으로 유명한 작곡가 호아킨 로드리고(1901~1999)는 앞을 보지 못하는 장애를 극복하며 20세기 최고의 작곡가 반열에 이름을 올린 스페인을 대표하는 음악가이다. 그리고 이들과 더불어 소르, 예페스, 세고비아 등이 대중적인 기타 음악에 품위와 격조를 높인 스페인의 대표적인 기타 연주자들이었다.
슬픔의 승화 - 플라멩코
화려한 원색의 비장미가 돋보이는 플라멩코(Flamenco)는 스페인의 관광명소들로 유명한 세비아, 코르도바, 그라나다, 말라가 등 안달루시아 지방에서 시작되었다. 지나온 역사 속에 쌓인 이 지역 이슬람 문화의 흔적과 집시들 특유의 감성과 소외된 유대인들의 슬픔까지 뒤엉킨 플라멩코는 즉흥적이고 독창적인 예술로 발전되어 왔다. 불꽃을 의미하는 스페인어 ‘플라마’에서 유래되었듯이 플라멩코는 불꽃처럼 온몸을 불사르듯 열정의 마음과 격정적인 표현을 담고 있다. 희로애락을 담은 찬란한 연주 아래 호흡이 노래가 되고, 삶이 춤이 된다. 이렇듯 플라멩코는 춤과 노래, 그리고 연주와 박자로 구성되는데, 일정한 형식 없이 즉흥적으로 이뤄지는 춤(Baile)과 근원이 되는 노래(Cante), 격정적인 기타연주(Togue), 그리고 리듬을 맞추는 힘찬 발구름(Zapateado)과 박수(Palmas)로 이루어진다.
먼저 플라멩코 춤은 온몸으로 지난 삶의 비애를 노래한다. ‘요정들이 추는 듯한 예술’이라 불리는 이유도 춤의 몸짓과 동작 하나하나가 모두 예술이기 때문이다. 스페인의 여자들은 어릴 적부터 플라멩코를 배우는데, 원색의 주름치마를 입고 추는 춤에서 개인적인 감정과 즉흥적인 표정이 중요하므로, 지나온 삶의 경험이 축적된 40대 이후의 나이 든 무용수에게서 그 진가가 발휘된다고 한다. 또한, 노래도 짙은 감성을 중요시하기 때문에 거칠고 허스키한 목소리의 소위 ‘꺾는 창법’으로 부르는 게 특징이다. 이슬람 문화가 짙게 베어 있는 플라멩코의 노래는 소리치거나 읊조리는 듯한 주문과도 같으며, 마치 우리의 판소리가 연상되기도 한다.
춤과 마찬가지로 처절한 감정을 온몸으로 표현하기 위해 표정이 중요하므로 카라비에하(Caravieja)를 강조한다. 카라비에하는 ‘늙은 얼굴’이라는 뜻으로 플라멩코의 노래와 춤에서 매우 중요한 요소이다. 이처럼 플라멩코는 그 화려함에 숨겨진 기묘한 슬픔을 보고 느껴야 한다. 8세기부터 15세기까지 700여 년 동안 이슬람권의 억압을 받는 민중들의 고초와 차별받고 방랑하던 집시들의 간절함과 소외되었던 유대인들의 처절함이 모두 녹아 있는 플라멩코는 대부분 악보 없이 구전으로 전해졌으며, 동굴과 같은 폐쇄된 공간에서 시간의 제약 없이 저녁부터 밤늦게까지 연주했다고 한다. 자신들의 삶에서 슬픔과 기쁨을 풀어내고 해소하려 했던 것이 생활과 문화가 되었고, 그래서 플라멩코에는 그들만의 한이 있고, 그들의 혼을 느낄 수 있다.
전설 - 카마론과 파코 데 루치아
대표적인 플라멩코 가수로는 카마론 데 라 이슬라(Camaron de la Isla, 1950~1992)가 있다. 이미 전설이 되어버린 그는 집시의 후예로 태어나 41세에 요절하기까지 애수와 한이 맺힌 플라멩코의 혼을 노래한 가수다. 특유의 거친 목소리와 ‘늙은 얼굴’을 상징하는 듯한 고뇌에 찬 슬픈 표정에서 플라멩코 노래의 진수를 들려준다.
또한 플라멩코 기타의 전설로 불리는 파코 델 루치아(Paco de Lucia, 1947~2014)는 편협했던 집시음악을 세계인을 사로잡은 월드뮤직으로 발전시킨 20세기 최고의 기타리스트였다. 가난한 어촌마을에서 성장하면서 플라멩코 기타를 삶으로 터득했던 그는 세계적인 재즈 연주자로 활동하면서 현대 재즈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플라멩코의 세계화를 구현해낸 그를 기리며 음악 평론가들은 ‘플라멩코는 파코 데루치아 등장 전과 후로 나눈다“고 정의한다.
반세기 전 방랑의 슬픔과 한으로 시작된 음악이 스페인 사람들의 생활이 되었고, 가슴 깊숙한 곳에서 끌어 올리는 짙은 감수성과 영혼을 담은 그들의 예술에 많은 사람들이 찬사를 보낸다. 슬픔을 묻어버리고 한 떨기 지지 않는 꽃으로 피어나 그 생명력을 이어온 플라멩코는 화려하면서 슬픈 음악으로 세계인의 마음에서 타오르고 있다.
CBM PRESS TORONTO 3월호,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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