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살기 위해 노래했던 작은 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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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Toronto 댓글 0건 조회 2,732회 작성일 20-11-14 09:41본문
영화보다 더 극적이고, 더 파란만장했던 에디트 피아프의 삶을 조명한 영화 <장밋빛 인생>은 치열했던
인생 무대에서 작은 새처럼 울어 대는 영혼의 목소리와 노래를 스크린에 펼쳐낸다.
음악이 영화를 만났을 때 8
‘장밋빛 인생’, ‘고엽’ 등 가을을 대표하는 프랑스의 샹송이 울려 퍼지는 파리의 도심을 거니는 것을 가장 낭만적인 가을 여행으로 생각하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으리라. 낙엽이 쌓여 있는 거리를 거닐면서 앙상한 뼈대를 드러낸 가로수를 바라보고 있노라면, 에디트 피아프의 노래 한 곡이 간절히 생각난다. 그녀의 대표곡인 <사랑의 찬가>는 비록 가을을 노래한 것은 아니지만, 60여 년 전의 이맘때쯤 사랑하는 연인과 영원한 이별을 고하며 부른 애절한 노래다. 슬픔을 노래한 오래된 곡이지만, 마치 ‘사랑’이란 단어가 의미하는 모든 것을 포용하듯 슬픔을 이겨내는 희망을 담고 있으며, 늘 진행형으로 생생한 감동을 전한다.
장미 빛 인생 (LA VIE EN ROSE), 2007년작
음악 - 크리스토퍼 거닝, 에디트 피아프
감독 - 올리비에 다한
주연 – 마리옹 코티아르, 제라르 드파르디유
불같은 사랑을 노래하다
1949년 10월 27일 파리를 떠나 미국으로 향하던 에어프랑스의 록히드기는 대서양 상공에서 추락하고 만다. 48명의 탑승객 전원이 사망한 이 사고는 20세기에 빈번했던 비행기 사고 중 하나지만 적어도 프랑스에게는 잊을 수 없는 참사였다.
사망자 중에는 프랑스의 국민가수 에디트 피아프의 연인이자 프랑스 역사상 최고의 권투 선수였던 마르셀 세르당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마르셀은 프로복싱 미들급 세계 챔피언으로 에디트의 연인으로 알려지기 전부터 프랑스인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았다. 그런 그는 외모는 볼품없지만, 폭발적인 가창력을 지닌 에디트에게 한눈에 반했다. 그는 사랑에 빠진다. 뉴욕공연 중이던 에디트는 며칠 후면 만날 예정이던 마르셀에게 전화를 걸어 “지금 당장 보고 싶다”고 재촉한다. 마르셀은 예약한 선박편을 취소하고, 급하게 비행기 편을 찾아 몸을 실었다. 그도 역시 하루라도 빨리 연인을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두 연인의 불같은 사랑은 비극을 불렀다.
충격적인 비행기 참사로 인해 애인의 돌연사를 접한 에디트는 사랑을 잃은 슬픔으로 절규하고, 사흘 낮과 밤을 세상과 단절한 채 마르셀과의 영원한 사랑을 담은 시를 쓴다. 죽음을 초월하는 불멸의 사랑을 노래한 시는 이내 가사가 되었고, 그녀의 오랜 친구이자 작곡가인 마르그리트 모노가 바로
곡을 붙여 <사랑의 찬가 Hymne A L’amour >가 완성된다. 며칠 뒤 에디트 피아프는 뉴욕에서 이 노래를 처음 불렀고, 뉴욕은 그녀에게 사랑하는 이를 영원히 기다려야만 하는 슬픈 도시로 남는다.
노래하지 않으면 살 수 없었던 작은 새
영화의 도입부는 마르셀과의 사랑으로 행복이 넘친다. 마르셀이 자신의 생애에서 유일한 사랑이라고 믿었던 그녀는 장미꽃처럼 활짝 핀 아름다운 이 시절에 <장밋빛 인생 La Vie En Rose>를 부른다. 참으로 기구했던 삶이었지만, 노래를 부를 수 있어 살 수 있었던 그녀가 사랑까지 얻어 행복했던 순간이었다. 그러나 무대에서의 화려함과 달리 48년의 짧은 생애의 대부분을 힘들게 살아야만 했던 그녀에게 마르셀과 애달픈 사연은 단편에 지나지 않는다.
1915년 1차대전이라는 격변의 시기에 곡예사인 아버지와 무명 가수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에디트 피아프의 본명은 에디트 조반나 가시옹(Edith Giovanna Gassion)이다. 길에서 태어났다고 할 만큼 가난했고, 생후 2개월 만에 고아가 되어 거리를 떠돌았다. 각막염으로 실명의 위기를 겪는 등 처참했던 어린 시절을 영화에서는 노르망디의 우울한 풍경으로 그려낸다. 소녀가 된 에디트는 거리에서 노래를 부르며 불우한 삶을 이어간다. 그녀가 천부적인 가창력으로 처음 거리에서 부르는 프랑스 국가<라 마르세예즈>는 영화 속 거리의 청중들과 더불어 관객들마저 감동하게 한다. 그러나 생활은 여전히 가난했으며, 미혼모로 낳은 유일한 혈육이었던 딸은 2살의 어린 나이로 세상을 떠난다.
가수의 꿈을 품은 채 거리를 떠돌며 동전푼에 의존해 노래를 부르던 에디트를 발탁한 사람은 카바레 사장 루이 르플레(제랄드 드파르디유) 였다. 불우한 어린 시절과 불행했던 삶의 질곡이 한으로 맺혀 토해내듯 부르짖는 그녀의 노래에 청중은 눈물로 감동했다. 영양실조로 키가 140cm에서 멈춘 그녀에게 ‘작은 참새 (piaf)’라는 예명이 붙었다. 무대를 누비게 된 ‘작은 참새’가 ‘거인’이 되는 데는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그러나 명성을 얻은 그녀에게 태생부터 따르던 시련과 고난은 멈추지 않는다. 그녀는 하늘로부터 재능을 받은 대신 불행을 타고났는지, 마르셀를 비롯하여 만나는 남자마다 파경에 이르고 급기야 알코올과 약물에 탐닉했으며 여러 차례 자살을 시도하기도 하는 등 파란만장했던 그녀의 삶이 영화 속에 전개된다. 술과 약에 의존한 무질서한 생활로 건강에 한계를 느낀 에디트는 자신의 비극적 삶을 노래한 <아니, 후회하지 않아 Non, Je Ne Regrette Rien>을 마지막 씬에서 열창한다. 몸이 불편해서 구부정한 자세로 올라온 그녀의 얼굴은 나이에 비해 10년 이상은 더 늙어 보인다. 그러나 그녀는 정적 속의 우렁찬 목소리로 혼신의 힘을 다해 자신의 모든 삶이 후회 없었음을 노래한다. 누군가 인터뷰에서 그녀에게 물었다. “노래를 못하게 되면 어떻게 하실 건가요?”, “더 살 수 없겠지.” 에디트 피아프에게 진정 중요한 것은 노래 그 자체였다. 그리고 그녀의 말처럼 더 노래하지 못하는 슬픈 새는 1963년 10월 11일 48세의 나이로 삶을 마감했다.
노래하지 않으면 살 수 없었던 작은 새 - 에디트 피아프 역을 연기한 프랑스의 여배우 마리옹 코티아르는 그해 80회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받기에 충분한 열연을 펼쳤다.
컬럼 제공: 송정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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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BM PRESS TORONTO 11월호,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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