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프 열혈청년 권용인의 세계일주 - 일확천금의 늪
페이지 정보
작성자 Ed Park 댓글 0건 조회 1,895회 작성일 15-07-27 05:37본문
2013. 12. 11
이곳은 알버타 북서부의 작은 마을 Fox Creek. 나는 현재 신축호텔 공사현장에서 노가다(막노동) 중이다. 솔직히 너무 춥고 체력이 많이 딸린다.
혹한의 추위(영하 30도), 온통 하얀 세상! 매일같이 눈이 내린다. 평소 안 쓰던 근육들을 사용했더니 '어머, 오빠! 왠일이야~왠일이야!? 나 완전 깜놀!ㅋㅋㅋ' 하면서 겁나 욱씬욱씬 거린다.
일할 때마다 느끼지만 '남의 돈 벌어먹기' 참 힘들다.
갑자기 문득, 쉽게 돈 벌려고 헛된 욕심을 부리다, 많은 돈을 탕진했던 1년 전이 생각나서 삽질을 멈추고, 아무도 없는 허공에 욕을 지껄인다.
"에라이 씨부럴!!!"
온몸에 흙먼지를 뒤집어 쓴 채, 맨손으로 '패앵~' 코를 푸는 내 자신이 스스로도 참 한심하고, 안쓰럽다. '내가 미쳤지! 그 돈만 탕진 안 했어도 이런 고생 않았을 텐데...' 하며 때 늦은 후회를 할 뿐이다.
나는 1년 전 여행경비의 대부분을 도박으로 탕진했었다. 절망의 구렁텅이에서 좌절했었다. 자괴감과 후회 속에 '세계일주'라는 꿈을 포기 했었다. 이 때가 여행 중 가장 춥고, '부끄럽고', 힘든 시기였다.
일확천금의 늪
돈은 여행자의 적이자 친구!!! 달콤한 유혹에 이끌려 돌아다니다, 정신을 차렸을 때는 이미 헤어나올 수 없는 늪의 한 가운데였다. 그 늪은 모든 것을 갖춘 듯 화려해 보였지만, 세 가지가 없었다. 시계와 창과 거울!!! 그렇다. 그 늪의 이름은 '카.지.노'였다.
어디서부터 잘못 된 걸까?
호주에서의 마지막 날 친구와 재미삼아! 그리고 경험삼아 찾은 시드니의 큰 카지노. 그 곳에서 200불을 땄다. 이후 홍콩에서 일을 마칠 때 쯤 사장님이 데려가 주신 마카오에서 또 700불 가량을 땄다.
필리핀 세부에 머물면서 유흥 삼아 하루에도 몇 번씩 카지노를 드나들며 도박을 즐겼다. 어딜 가든, 무슨 게임을 하든 항상 이겼다. 액수가 적든 크든 언제나 마지막엔 웃으며 카지노를 나왔다.
돈도 돈이지만, 승부에 이겼다는 쾌감이 나를 황홀하게 만들었다. 계속되는 승리에 나는 '초심자의 행운'을 '실력'이라 착각하게 되었다.
지금 생각하면 정말 스스로도 어처구니 없고 한심하지만, 그 당시 나는 내 '재능'을 발견한 줄만 알았다. '내가 걸어가야 할 길'을 찾았다고 확신 했었다.
일확천금의 헛된 환상에 젖어 스스로 '마카오 권'이라는 별명을 짓고, 프로 겜블러로서의 삶을 꿈꾸었었다. 참 어리석었지. 지금 생각하면 정말... 'ㅂ신'같다.
그 당시 나는 확실히 도박에 중독되어 있었다. 꿈 속에서도 카드를 받고, 인터넷 도박 커뮤니티를 돌아다니며 게임규칙과 베팅 전략을 연구할 정도였으니까! 내가 '뭔가 잘 못 되어가고 있다'는 느낌을 받으면서도, 도박을 끊기란 쉽지 않았다. 돈을 딸 때의 쾌감이 불안감, 좌절감, 죄책감을 외면하게 만들었으니까...
필리핀을 떠나며 '앞으로 카지노에 가지 않으리라, 도박하지 않으리라' 다짐은 했지만... 그것 조차 스스로에 대한 거짓말이었다. 나는 이미 스스로를 통제하지 못하는 탈선한 기차였다. 아무도 나를 막아줄 수 없었고, 반대편에서 파멸이란 이름의 기차가 다가오고 있었다.
나락으로 추락하다.
에베레스트 베이스 캠프를 다녀 온 날, 네팔친구 Raj의 집으로 돌아가기 전 나는 술도 마시고 요기도 할 겸, 카트만두 시내에 위치한 작은 카지노를 찾았다. (네팔의 카지노에서는 밥과 술, 음료와 담배를 무료로 제공했다.)
공짜로 끼니를 떼우고, 무희들의 작은 공연만 볼 생각이었다. 그러나 필리핀을 떠나며 그렇게 굳게 다짐을 했건만, '게임 조금만 해 볼까? 에이~ 고생했는데 심심풀이로 100불 정도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동전을 던져서 나오는 면을 알아맞힐 확률은 50%다. 그런데, 30번을 던져서 모두 다 연달아 맞출 확률은 과연 얼마 정도 될까? 에베레스트의 정기 때문이었을까? 나는 연속으로 30번을 넘게 맞췄다. 단 한번도 지지 않고, 거는 족족 승리했다. 믿거나 말거나, 보태지 않은 사실이다.
계속해서 배팅에 승리하자 카지노 안이 소란스러워졌다. 모든 사람들이 나를 따라 배팅하기 시작했다. 장내의 모든 사람들이 내 테이블로 몰려들어 구경했고, 딜러가 가지고 있는 칩이 거의 소진되었다.
불과 몇 시간 만에, 내 앞의 칩이 수북히 쌓였다. 잠시 쉬는 시간에 칩을 미화로 환산해 계산하니 3000불 가량 딴 상태였다. (네팔의 작은 카지노에서 3000불은 정말 큰 돈이었다.) 황제가 된 기분이었다.
아니, 그 때 나는 황제였었다. 처음에는 초라한 내 옷을 보고 무시하던 웨이터들이 서로 다투어 내 시중을 들기 시작했다. 내가 담배를 꺼내 물면 온 사방에서 라이터가 나왔다. 팁을 받기 위해 웨이터와 직원들이 내 뒤에 줄을 섰다. 나는 거드름을 피며 딸 때 마다 내게 잘 보이려 애쓰는 사람들에게 1불씩 팁을 주곤 했다.
몇몇 네팔 여자들은 내 허벅지를 만지고 팔짱을 끼는 등 추근덕 거렸다. 나와 반대로 베팅하다가 돈을 다 잃은 녀석이 내게 욕을 하고 시비를 걸기도 했고, 구경꾼 중 몇 명이 내 칩을 몰래 훔치려다가 적발되어 쫓겨 나는 일도 벌어졌다 했다. 계속해서 사람들이 성가시게 해서 매니저에게 불만을 토로하였다. 그러자 매니저가 VIP룸으로 옮길 것을 제안했다. 작은 카지노에서 VIP룸이라 해도 거기서 거기였지만, 기본 판돈이 훨씬 큰 곳이었고, 구경꾼들이 접근하기 힘들었다.
그때 그만뒀어야 했다. VIP룸으로 옮기지 말고 돈을 많이 땄을 때 그만뒀어야 했는데... 돈 욕심이 났다. 이런 페이스라면 오늘 하루 3000불이 아니라, 30000불도 딸 수 있을 것 같았다. 인도인 아저씨, 중국아저씨, 그리고 나. 세 명이서 VIP룸에서 게임을 시작했다. 처음에는 세 명이 합심하며 게임을 잘 풀어 나갔다.
그러나 어느 순간, 인도 아저씨가 나와 중국아저씨를 배신하고 나와 반대로 배팅하기 시작했다. 그 때부터 결과는 참패... 기본 배팅 액이 큰 곳이라 금새 그 간 땄던 돈을 모두 잃고 말았다.
중국 아저씨는 어느 정도 돈을 잃자 '허허허' 웃으며 잠을 자러 갔지만, 나는 본전이 된 상태에서도 쉽사리 카지노를 뜨지 못 했다. 본전인데도 마치 큰 손해를 본 기분이 들었다.
흐름만 다시 오면 3만 불도 벌 수 있을 거라는 허황된 욕심에 절대 써서는 안될 여행자금에 손을 댔다. 처음에는 조금!!! 그러나 기본 판돈이 큰지라, 몇 분 되지도 않아 금새 소진되었다. 총알(자본금)이 부족해서 잘 안 된다는 생각에 이번엔 더 많은 돈을 환전했다. 그러기를 몇 번!!! 이제는 손해가 심해져서 떠날 수 없게 되었다.
2만 불을 버는 것은 둘째치고, 본전을 회복해야 된다는 생각에 ATM에서 돈을 인출하기 시작했다. 한번, 두번, 세번... 돈을 딸 때는 정말 어디에 걸어도 이겼는데, 꼴기 시작하니 어딜 걸어도 꼴기 시작했다. 계속해서 지다 보니... 나중에는 '될 대로 되라!' 자포자기하게 되었다.
정신을 차렸을 때는 너무 늦었었다. 결과는 참혹했다. 얼마 전 까지만 해도 1만 8천불이 있었는데... 통장에 겨우 5천불이 남은 상태. 13000불! 1400만원을 모으는 데는 반년이 걸렸지만, 쓰는 데는 이틀도 걸리지 않았다. 집으로 돌아왔다. 허탈했다. 괴로웠다. 이틀간 잠을 자지 않았는데, 잠이 오지 않았다. 그러다 잠들면 꿈속에서도 괴로워했다. 지금 이 현실이 꿈이기를... 일어나면 모든 것이 꿈이었기를 간절히 바랬다.
도박중독자의 말로는 비참했다. 이렇게 시궁창까지 타락하고 싶지는 않았는데, 거울 속의 내 모습은 정말 거지 같았고, 버러지 같았다. 일확천금으로 황제가 되는 환상은 결국, 나를 나락 끝으로 추락시켰다.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었다. 괴로움에 스스로를 원망했다. 그렇게 방황을 시작했다. 카트만두를 떠나, 계속해서 이동했다. 어딜 가든 병든 마음은 치유되지 않았다. 마음이 병드니, 몸도 아팠다. 계속해서 설사가 나왔다.
'이제는 지쳤다. 여기까지가 끝인가 보다. 한국으로 돌아가자'. 여행 중 처음으로 꿈을 포기하고 자기합리화를 했다. '한국에 돌아가서 취업하고, 결혼하고, 애낳고...' 그렇게 현실과 타협하기로 마음 먹었다. 그렇게 꿈을 포기하니 모든 것이 어둡게 보였다. 답답했다. 칠흙같은 심해로 가라앉는 듯 했다.
그런 나를 다시 수면위로 끌어올려 준 것은 한줄기 황금 빛이었다. 시크교도들의 성지 황금사원(Golden Temple)! 어둠 속에 환하게 빛나는 황금사원의 모습이 그렇게 아름다울 줄은 상상도 못했다.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났다. 너무 아름다워서 환하게 웃는데, 눈물이 흘렀다.
밤새 사원 가장자리에 앉아서 황금사원을 바라보았다. 며칠 사이에 너무나 많은 것이 변했다. 혼란스러웠고, 허탈했고, 괴로웠다. 죽고 싶었다. 내 자신이 너무 싫었다. 사원의 황금 빛을 바라보고 앉아있으니 왠지 마음이 안정이 되었다. 그렇게 그 곳에서 매일 밤 황금사원을 바라보며 조금씩 스스로를 돌아보고 뉘우치고, 참회했다.
그러던 어느 날 생각했다.
'얼마나 더 많은 감동들이 이 세상에 남아 있을까?' 아직 미련이 많이 남았다.
'내가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데, 여기에서 포기 할 순 없어.' 포기 하고 싶지 않았다.
'어차피 700불로 시작했잖아? 지금은 5000불이나 있잖아!? 처음보단 더 나은 상황이잖아!?' 억지로 긍정적으로 생각하려 노력했다.
'이대로는 포기 못해! 못 먹어도 GO. 갈 데 까지 가볼래.' 오기가 생겼다.
'그래.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자!'
그렇게 다시 꿈꾸게 되었다.
'일확천금??? 그딴 거 없다!'
이 교훈 하나를 얻기 위해, 너무나 뼈아픈 대가를 치렀다. 영하 30도에 땀을 뻘뻘 흘리는 지금, 1년전 생각이 나면 '에이 씨부럴' 하면서 또 욕 지꺼리가 나지만...
그렇게 축 쳐져 일하다가도, 고물 오토바이로 정열의 대륙을 '부아앙~'달릴걸 생각 하면, 또 힘이 난다.
그렇게 다시 한삽 더 퍼 나른다. 남미야 기다려라. 내가 곧 간다. 두고 봐라! 내도 해볼란다. 권'게바라'!!
CBM 자막뉴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