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ving 마지막 낭만 – 이탈리아 칸초네 (Canz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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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Toronto 댓글 0건 조회 2,476회 작성일 19-10-10 17:30본문
이태리 음악
화려했던 로마제국의 역사와 르네상스 시대를 거쳐온 이탈리아는 유럽 문화와 역사의 중심지로 그 숨결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 아름다운 기후와 자연을 품고 있는 이탈리아 사람들은 사랑과 정열의 낭만으로 늘 음악과 함께 하는 예술가적 기질을 지니고 있다. 이탈리아 사람들에게는 눈 부신 태양과 맑은 바다가 알려준 인생의 3가지 목표가 있다고 한다. “먹고, 마시고, 사랑하라 !” 삶을 단순하게 만들고, 그 단순한 삶을 즐기라는 이탈리아식 격언이다.
비발디의 아름다운 바로크 선율과 함께 로시니, 도니제티, 벨리니, 베르디와 푸치니에 이르기까지 화려한 오페라의 역사를 지닌 이탈리아의 음악의 보편적 낭만성은 대중과 함께해 오면서 ‘칸초네(Canzone)’라 불리는 대중음악을 오래전부터 시작했다.
14세기부터 세계 3대 미항 중 하나로 꼽히는 나폴리 항구에서 가요제가 시작했는데, 하층민이 즐겨 부른 대중가요가 대부분이었으며, 이것이 칸초네로 발전되었다. 칸초네는 단순히 노래를 지칭하는 말로 현재는 이탈리아의 모든 노래를 뜻한다. 전통적인 칸초네의 특징은 멜로디가 밝고, 내용도 단순하고, 솔직하게 표현한 사랑의 노래가 많다. 이탈리아인 특유의 낙천적인 기질과 낭만, 정열이 느껴지는 정서적 특징으로 삶의 경험을 노래했으며,
무엇보다 아름다운 선율과 쉽게 따라 부를 수 있는 솔직한 가사로 표현된 사랑 노래가 많다는 점을 꼽을 수 있다.
칸초네의 멜로디가 귀에 익숙하고 따라 부르기 쉬운 이유는 나폴리 방언 자체의 독특함에서 비롯된 것인데, 말이 곧 선율이 되었고 화음이 되었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전통의 칸초네로는 ‘오 나의 태양(O Sole Mio)’, ‘돌아오라 소렌토로(Torna A Surriento)’와 ‘후니쿨리 ‘후니쿨라(Funiculi-Funicula)’ 등이 있다. 칸초네의 왕으로 불리는 ‘오 솔레 미오’는 제목처럼 이탈리아의 눈 부신 태양을 찬양한 곡으로, 1898년 나폴리의 피에디그로타 가요제에서 우승한 노래다. ‘돌아오라 소렌토로’는 칸초네의 여왕 격의 노래로 1902년 같은 가요제에서 우승한 곡이며, 이 노래가 세계인의 사랑을 받으면서 덕분에 소렌토는 세계적인 도시가 되었다.
‘후니쿨리 후니쿨라’는 1880년 베스비오 화산에 설치한 케이블카의 홍보를 위한 경쾌한 곡으로 만들어져서 피에디그로타 가요제의 우승까지 일궈낸 노래이다. 이외에도 나폴리 북쪽의 작은 어촌 마을인 ‘마레키아로(Marecchiaro)’를 노래한 곡과 달빛 창가 아래서 사랑을 고백하는 세레나데 ‘마리아 마리(Maria Mar)’도 지금까지 사랑받는 전통의 고전적 칸초네들이다. 칸초네는 온몸으로 부르는 특별한 감성을 요구하는데, 나폴리 칸초네를 부르기 위해서는 여린 목소리와 500g의 마음이 있어야 한다. 여기서 ‘500g의 마음’은 이탈리아인 특유의 낭만적 기질에서 나오는 독특한 감성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이처럼 나폴리 곳곳에서 내려온 가요제가 해마다 열리면서 이탈리아 대중들의 폭발적인 인기와 꾸준한 사랑을 받아온 칸초네는 1951년부터 시작한 산레모가요제를 통해 세계 음악계로 그 영역을 넓혀 가게 된다. 1958년에 최우수상을 받은 ‘볼라레(Volare)’가 세계적으로 히트하여, 주류시장인 미국의 팝 음악계에 진출하였고, 수많은 수상 곡들이 각 나라의 언어로 리메이크하여 노래하면서 국제적인 명성을 얻게 되었고, 유행처럼 세계 가요제의 붐을 일으키기도 하였다. 이후 이탈리아의 칸초네는 록 음악이나 라틴 리듬 등 다양한 장르와 스타일의 음악과 접목되기 시작하면서 세계 팝 시장에서도 성공을 거두었다.
산레모가요제 출신으로 세계적 명성을 얻은 가수로는 1971년 우승곡 ‘케사라(Che Sara)’를 부른 시각 장애인 가수 호세 펠리치아노를 비롯하여, 영화에 삽입되어 유명해진 1961년 우승곡 ‘알-디-라(Al-Di-La)’를 부른 루치아노 타욜리와 1967년 입상 곡인 ‘한없는 세계(Il Mundo)’를 부른 지미 폰타나 등이 있다. 또한 1960년대와 70년대 칸초네 열풍으로 히트한 마리사 사니아가 부른 ‘언덕 위의 작은 집(Casa Bianca)’, 알리다 칠리의 ‘죽도록 사랑해서(Sinno me moro), 나다가 부른 ‘마음은 집시(Il Cuore E Uno Zingaro)’ 등은 국내에도 잘 알려져 우리에게는 꽤 익숙한 노래들이다. 끝으로, 폭발적인 가창력으로 ‘칸초네의 디바’로 불리며 월드스타의 인기를 누린 밀바(Milva)도 역시 1961년 산레모 가요제에서 3위로 입상하면서 주목을 받은 가수였다.
이후 독일어, 이탈리아어, 스페인어, 라틴어로 노래하면서 칸초네를 세계에 알렸으며, 직접 가사를 쓰고, 영화배우로도 활동하는 등 다재 다능했던 만능 연예인이었다. 수많은 히트곡들 가운데 ‘눈물속에 피는 꽃(L'immensita)’, ‘서글픈 사랑 (Nessuno Di Voi)’, ‘지중해 (Mediterraneo)’, 안녕 내사랑 ! (Bella ciao!)’ 등이 대표곡들이라 할 수 있고, 특히 ‘축제의 밤 (Aria di festa)’은 트윈 폴리오가 번안하여 불러 국내에서도 히트한 곡이다. 1972년과 74년 2차례 내한공연을 통해 당시 국내 가요계에도 큰 영향력을 끼쳐 70년대 상당수의 여가수들이 밀바의 창법을 따라 하기도 했다. 이처럼 멜로디와 감성을 중시하는 이탈리아의 칸초네는 한때 전 세계인의 애창곡이었으며, 그 시절 들었던 낭만은 아직도 우리 가슴 한구석에 아련한 추억으로 간직하고 있다.
이외에도 1990년대 루치오 달라는 테너 파바로티와 듀엣으로 이탈리아의 전설적인 테너 엔리코 카루소를 기린 ‘카루소(Caruso)’를 다시 불러 1,000만 장 이상의 음반 판매 기록을 수립했으며, 팝페라 가수인 안드레아 보첼리(Andrea Bocelli)와 이탈리아 국민 가수인 라우라 파우지니(Laura Pausini), 그리고 오페라틱 팝 트리오로 구성된 일 보로(Il Voro) 등이 현재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이탈리아 출신의 월드 스타들이다.
CBM PRESS TORONTO 10월호,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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컨텐츠 제공 : 송정호 https://blog.naver.com/jhsong0713
화려했던 로마제국의 역사와 르네상스 시대를 거쳐온 이탈리아는 유럽 문화와 역사의 중심지로 그 숨결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 아름다운 기후와 자연을 품고 있는 이탈리아 사람들은 사랑과 정열의 낭만으로 늘 음악과 함께 하는 예술가적 기질을 지니고 있다. 이탈리아 사람들에게는 눈 부신 태양과 맑은 바다가 알려준 인생의 3가지 목표가 있다고 한다. “먹고, 마시고, 사랑하라 !” 삶을 단순하게 만들고, 그 단순한 삶을 즐기라는 이탈리아식 격언이다.
비발디의 아름다운 바로크 선율과 함께 로시니, 도니제티, 벨리니, 베르디와 푸치니에 이르기까지 화려한 오페라의 역사를 지닌 이탈리아의 음악의 보편적 낭만성은 대중과 함께해 오면서 ‘칸초네(Canzone)’라 불리는 대중음악을 오래전부터 시작했다.
14세기부터 세계 3대 미항 중 하나로 꼽히는 나폴리 항구에서 가요제가 시작했는데, 하층민이 즐겨 부른 대중가요가 대부분이었으며, 이것이 칸초네로 발전되었다. 칸초네는 단순히 노래를 지칭하는 말로 현재는 이탈리아의 모든 노래를 뜻한다. 전통적인 칸초네의 특징은 멜로디가 밝고, 내용도 단순하고, 솔직하게 표현한 사랑의 노래가 많다. 이탈리아인 특유의 낙천적인 기질과 낭만, 정열이 느껴지는 정서적 특징으로 삶의 경험을 노래했으며,
무엇보다 아름다운 선율과 쉽게 따라 부를 수 있는 솔직한 가사로 표현된 사랑 노래가 많다는 점을 꼽을 수 있다.
칸초네의 멜로디가 귀에 익숙하고 따라 부르기 쉬운 이유는 나폴리 방언 자체의 독특함에서 비롯된 것인데, 말이 곧 선율이 되었고 화음이 되었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전통의 칸초네로는 ‘오 나의 태양(O Sole Mio)’, ‘돌아오라 소렌토로(Torna A Surriento)’와 ‘후니쿨리 ‘후니쿨라(Funiculi-Funicula)’ 등이 있다. 칸초네의 왕으로 불리는 ‘오 솔레 미오’는 제목처럼 이탈리아의 눈 부신 태양을 찬양한 곡으로, 1898년 나폴리의 피에디그로타 가요제에서 우승한 노래다. ‘돌아오라 소렌토로’는 칸초네의 여왕 격의 노래로 1902년 같은 가요제에서 우승한 곡이며, 이 노래가 세계인의 사랑을 받으면서 덕분에 소렌토는 세계적인 도시가 되었다.
‘후니쿨리 후니쿨라’는 1880년 베스비오 화산에 설치한 케이블카의 홍보를 위한 경쾌한 곡으로 만들어져서 피에디그로타 가요제의 우승까지 일궈낸 노래이다. 이외에도 나폴리 북쪽의 작은 어촌 마을인 ‘마레키아로(Marecchiaro)’를 노래한 곡과 달빛 창가 아래서 사랑을 고백하는 세레나데 ‘마리아 마리(Maria Mar)’도 지금까지 사랑받는 전통의 고전적 칸초네들이다. 칸초네는 온몸으로 부르는 특별한 감성을 요구하는데, 나폴리 칸초네를 부르기 위해서는 여린 목소리와 500g의 마음이 있어야 한다. 여기서 ‘500g의 마음’은 이탈리아인 특유의 낭만적 기질에서 나오는 독특한 감성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산레모가요제 출신으로 세계적 명성을 얻은 가수로는 1971년 우승곡 ‘케사라(Che Sara)’를 부른 시각 장애인 가수 호세 펠리치아노를 비롯하여, 영화에 삽입되어 유명해진 1961년 우승곡 ‘알-디-라(Al-Di-La)’를 부른 루치아노 타욜리와 1967년 입상 곡인 ‘한없는 세계(Il Mundo)’를 부른 지미 폰타나 등이 있다. 또한 1960년대와 70년대 칸초네 열풍으로 히트한 마리사 사니아가 부른 ‘언덕 위의 작은 집(Casa Bianca)’, 알리다 칠리의 ‘죽도록 사랑해서(Sinno me moro), 나다가 부른 ‘마음은 집시(Il Cuore E Uno Zingaro)’ 등은 국내에도 잘 알려져 우리에게는 꽤 익숙한 노래들이다. 끝으로, 폭발적인 가창력으로 ‘칸초네의 디바’로 불리며 월드스타의 인기를 누린 밀바(Milva)도 역시 1961년 산레모 가요제에서 3위로 입상하면서 주목을 받은 가수였다.
이후 독일어, 이탈리아어, 스페인어, 라틴어로 노래하면서 칸초네를 세계에 알렸으며, 직접 가사를 쓰고, 영화배우로도 활동하는 등 다재 다능했던 만능 연예인이었다. 수많은 히트곡들 가운데 ‘눈물속에 피는 꽃(L'immensita)’, ‘서글픈 사랑 (Nessuno Di Voi)’, ‘지중해 (Mediterraneo)’, 안녕 내사랑 ! (Bella ciao!)’ 등이 대표곡들이라 할 수 있고, 특히 ‘축제의 밤 (Aria di festa)’은 트윈 폴리오가 번안하여 불러 국내에서도 히트한 곡이다. 1972년과 74년 2차례 내한공연을 통해 당시 국내 가요계에도 큰 영향력을 끼쳐 70년대 상당수의 여가수들이 밀바의 창법을 따라 하기도 했다. 이처럼 멜로디와 감성을 중시하는 이탈리아의 칸초네는 한때 전 세계인의 애창곡이었으며, 그 시절 들었던 낭만은 아직도 우리 가슴 한구석에 아련한 추억으로 간직하고 있다.
이외에도 1990년대 루치오 달라는 테너 파바로티와 듀엣으로 이탈리아의 전설적인 테너 엔리코 카루소를 기린 ‘카루소(Caruso)’를 다시 불러 1,000만 장 이상의 음반 판매 기록을 수립했으며, 팝페라 가수인 안드레아 보첼리(Andrea Bocelli)와 이탈리아 국민 가수인 라우라 파우지니(Laura Pausini), 그리고 오페라틱 팝 트리오로 구성된 일 보로(Il Voro) 등이 현재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이탈리아 출신의 월드 스타들이다.
CBM PRESS TORONTO 10월호,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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