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연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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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Toronto 댓글 0건 조회 2,768회 작성일 20-04-01 12:00본문
스탠리 큐브릭 감독이 연출한 영화 <2001년 스페이스 오딧세이>는 무한히 깊은 영상의 만남이자,
우주공간처럼 거대한 음악을 통해 과거와 미래를 넘나드는 경이로운 경험과도 같다
음악이 영화를 만났을때 1
음악과 영상의 만남은 최고의 궁합으로 서로에게 시너지 효과를 주면서 종합예술인 영화의 가치를 더욱 높여준다. 음악이 없는 영화를 상상할 수 없듯이, 음악 분야도 뮤직비디오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등 영상에 의존하는 ‘보는 음악’ 시대로 전환되고 있다. 영화 때문에 인기를 얻은 음악, 음악으로 인해 더욱 유명해진 영화, 그리고 영화와 음악 모두가 완벽하여 시대를 뛰어넘어 사랑받는 스테디셀러 영화들의 음악을 소개하면서 재미있는 영화음악의 이야기를 연재합니다.
영화사에 찬란히 빛나는 최고의 오프닝 장면
거의 반세기 전인 1968년 스탠리 큐브릭 감독이 연출한 영화 <2001년 스페이스 오딧세이>는 영화사에 찬란히 빛나는 위대한 작품이다. 무한히 깊은 영상의 만남이자, 우주 공간처럼 거대한 음악과의 조우였던 이 영화는 영상과 음악을 통해 과거와 미래를 넘나드는 경이로운 경험과도 같았다. 인류가 달에 도착하기도 전에 만든 영화라는 사실이 믿기 힘들 정도로 감독의 상상이 현실이 되어 가고 있다는 놀라움도 발견할 수 있다. 인공지능 컴퓨터 할(Hal) 9000의 묘사와 인터넷을 기반으로 하는 운영체계와 우주선과 우주 정거장의 사실적 표현 등은 현재의 시점에서 볼 때, 전혀 낯설지 않을 정도로 큐브릭 감독의 예언적 상상은 CG 기술이 없던 시절 세트와 시각효과만으로 실감 나게 우주를 묘사했다.
이 영화의 첫 장면은 매우 인상적이며 강렬한 메시지를 담고 있어 최고의 오프닝 장면으로 손꼽는다. 짙은 어둠 속의 고요를 깨면서 음악이 흘러나온다. 마치 새벽의 미명처럼 다가온 소리는 이내 팀파니와 관악기들이 만들어내는 웅장한 음악으로 울려 퍼지면서 관객들은 긴박함마저 느끼게 된다. 광활한 우주 공간에서 마치 태양이 떠오르듯 거대한 행성이 저 멀리에서 보이기 시작하면 또 다른 행성 하나가 고개를 서서히 내밀고 솟아오른다. 그 화면과 호흡을 맞추듯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교향시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가 계속해서 웅장하게 울려 퍼진다. 관악기들이 한꺼번에 뿜어내는 소리만으로도 새로운 세계가 탄생하는 것 같은 인상이다.
이어서 인류가 최초로 도구를 사용하게 되는 ‘대발견의 순간’을 묘사한다. 원숭이에 가까운 인류의 선조가 짐승처럼 포효하면서 뼈다귀를 던지는 순간, 뼈다귀는 빙글빙글 돌면서 하늘로 향하고 이내 우주선으로 화면이 바뀐다. ‘뼈’라는 하나의 도구를 사용해서 수백만 년 전의 과거로부터 미지의 세계인 미래로 향하는 시공 초월을 가능케 했다. 그리고 처음과 다른 여유로운 음악의 도입부가 전개된다. 누구나 알고 있는 친숙한 멜로디를 지닌 요한 슈트라우스 2세의 왈츠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강”이다. 우주선이 마치 춤을 추듯 아름답게 우주 공간을 누빈다. 영화 속에는 오직 광활한 우주의 신비로운 모습과 아름다운 왈츠 음악만으로 가득 채워져 있다. 무한한 우주의 세계처럼 끝없이 왈츠가 흐를 것 같았지만, 음악이 끝나고 먼 길을 떠나는 오딧세이의 여정이 비로소 시작된다.
이 두 개의 거대한 오프닝 시퀀스가 진행되는 20여 분 동안 대사는 단 한마디도 나오지 않는다. 오직 영상과 음악만으로 관객을 압도할 뿐이다. 큐브릭은 알 수 없는 미래의 우주 공간을 그려내면서 서로 상반된 2개의 클래식 음악을 사용했다. 그것도 관객이 잘 알고 있는 유명한 클래식 음악을 통해 한 마디의 대사 없이 앞으로 전개될 모험적 이야기를 암시하고 있다. 도구를 발견하는 먼 과거 이야기나 미래의 우주여행에 대한 무한한 상상력은 오직 음악만을 통해 깊어진다. 그렇게 큐브릭은 자신이 창조한 미지의 세계에 대한 경이로운 상상력을 음악을 통해 시공간마저 넘나드는 재미있는 여행으로 영화에 담아냈다. 또한 아무런 근친 관계가 없는 두 명의 슈트라우스,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와 요한 슈트라우스 2세라는 이름은 우연치고는 너무 절묘하게 맞아떨어지는 큐브릭 스타일의 장난스러운 언어적 유희였다. 큐브릭의 대가적인 위트는 전혀 다른 음악을 작곡한 두 거장 슈트라우스들의 음악적 깊이로 영상의 예술을 한층 더 높여주었다.
후기 낭만파음악의 마지막 주자로 독일 근대음악의 거장인 리하르트 슈트라우스는 이 영화의 첫 부분에 사용된 교향시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작곡한 후, 악보 첫머리에 그는 “음악이라는 수단으로 인류의 발전과 관념을, 그 기원부터 발전의 여러 가지 양상을 거쳐 종교적, 과학적으로 니체의 초인이라는 관념에 이르기까지를 전하려고 했다”라고 썼다. 큐브릭은 과연 이 글을 읽고 사용한 것일까?
과거속의 미래, 현재속의 과거, 그리고 미래
큐브릭 감독이 이 영화를 제작할 때 ‘2001’이라는 숫자를 머나먼 미래를 의미했겠지만, 현재 우리는 2001년을 지나 이미 20년의 세월을 더 보내고 있다. 이 영화를 본 사람이라면, ‘2001’이라는 숫자는 과거 속의 미래로 느껴질 것이다. 과거의 영화지만 여전히 미래적이며, 영원한 상상을 품고 있기 때문이다. 영화속의 인류의 기원을 담은 까마득한 과거나 인류가 우주 공간을 자유롭게 누비는 막연한 미래의 모습들이 영화적인 자유로운 상상의 모습으로 담고 있어, SF 영화의 고전으로 불리는 이유이기도 하다.
2013년 개봉되어 골든 글로브 상과 오스카상을 거머쥔 SF영화 ‘그래비티 Gravity’를 비롯하여 최근에 선보인 ‘마션 The Martian (2015)’, ‘패신저스 Passengers (2016)’, ‘라이프 Life(2017)’에 이르기까지 미지의 세계인 우주를 다룬 SF 영화들을 볼 때마다 SF영화의 고전인 큐브릭의 “2001 스페이스 오딧세이”를 떠 올린 사람은 필자만이 아니었으리라.
앞으로도 영원히 리하르트 슈트라우스라는 작곡가와 수많은 SF영화가 언급될 때마다 영화 <2001: 스페이스 오딧세이>가 함께 이야기될 것이다. 그래서 음악과 영화의 완벽한 만남으로 이 영화를 주저 없이 추천한다.
CBM PRESS TORONTO 4월호,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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